[보도자료] 스포츠가 남북 관계를 잇는 유일한 실천적 통로다

•

[도민시론┃정치·외교] 스포츠가 남북 관계를 잇는 유일한 실천적 통로다

김경성 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

▲ 김경성 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

▲ 김경성 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최근 북한은 제9차 당대회를 통해 조선로동당 규약을 전면 개정하며 한반도 정세에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선언했다. 이번 개정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은 ‘남조선혁명’ 관련 문구를 삭제하고 ‘통일’, ‘민족’, ‘남조선’ 등의 표현을 완전히 배제한 채,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공식화하고 법적·제도적으로 고착화했다는 점이다. 과거 민족적 유대감에 의존해 온 기존의 대북 교류 방식은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냉엄한 현실을 직시한 근본적인 접근법의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이처럼 단절과 대결의 기조가 제도적 장벽으로 굳어지는 국면에서 남북 관계의 돌파구를 어디서 찾아야 할 것인가. 정치가 빗장을 걸어 잠근 자리에서, 스포츠는 여전히 유연하고 단단한 평화의 유일한 열쇠로 빛을 발한다.

주목할 대목은 북한이 대내외 환경의 급격한 격변 속에서도 스포츠 영역에서만큼은 철저히 국제 기준을 준수해 왔다는 사실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이미 2013년 스포츠 부문의 국제 규범 준수를 천명한 바 있으며, 그해 평양에서 개최된 아시아 역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대한민국 선수단에게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연주를 허용한 것이 이를 명증한다. 이는 북한이 글로벌 스포츠 규범이 지배하는 무대 앞에서는 정치적 이념의 논리를 유연하게 조율할 수 있는 실리적 명분을 쥐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적 규범과 현실적 원칙이 실제 국내 현장에서 늘 매끄럽게 작동했던 것은 아니다. 지난 5월 ‘내고향 여자축구단’이 국내를 방문했을 때 정부의 뚜렷한 지침 부재로 인해 크고 작은 혼선이 빚어진 것은 뼈아픈 대목이다. 비록 헌법상 북한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스포츠 국제 기준이 엄존하는 현장에서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엄격한 태도가 수반돼야 한다. 숙소와 경기장에 상대의 국기를 걸고, 공식 호칭 역시 상호 존중에 입각해 다뤄야 마땅하다. 당시 기자회견장에서 ‘북측’이라는 불명확한 호칭의 혼선으로 인해 북한 감독이 퇴장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은, 우리가 스포츠를 대하는 외교적 세심함과 국제 기준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방증한다. 공식 호칭 하나, 국기 하나를 존중하는 작은 실천에서부터 ‘두 국가론’의 냉랭한 벽을 무너뜨릴 상생의 진정한 대화가 시작되는 법이다.

바로 이러한 냉혹한 현실 속에서 (사)남북체육교류협회가 지난 수년간 묵묵히 걸어온 길의 역사적 무게중심이 명확해진다. 중국 등 제3국을 무대로 한 국제대회나 향후 원산 등 북한 지역에서의 개최를 상정하고 추진해 온 ‘아리스포츠컵’ 국제 청소년 축구대회는, 지금과 같이 제도적 단절이 극에 달한 시대에 북한과 소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하고 실천 가능한 수단이다. 단순한 체육 행사를 넘어, 정치·군사적 이해관계의 타협 없이도 보편적 스포츠 규범 안에서 남과 북, 그리고 국제사회가 상호 대등하게 조우할 수 있는 고도의 전략적 플랫폼이다.

정치적 대화의 문이 굳게 닫힌 국면일수록,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의 정례적 교류는 경색된 남북 관계를 관리하고 향후 평화적 국면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가장 강력하고 유효한 지렛대다. 헌법적 가치를 지키는 동시에, 스포츠라는 보편적 언어를 통해 상대 체제의 국제적 규범 준수를 이끌어내는 영민한 접근이 필요하다.

북한의 체제 특성과 국제 스포츠 규범의 접점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이를 바탕으로 상호 존중의 무대를 넓혀가는 것만이 경색된 한반도에 평화의 온기를 불어넣는 유일한 길이다.